태국, 빠이 - 2013. 12. 12 ~ 19
대부분의 날을 술에 쩔어보냈지만 오늘은 이 정감 가는 마을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싶었다.
빠이 시내 한복판에서 잘 둘러보면 산 중턱에 새하얀 무언가가 있는 산이 보인다. 멀어 보이지는 않지만, 그리 가깝지도 않아 보이는 정도이다. 그 곳에 뽀얀 불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금세 다녀오지만 나는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르기 때문에 슬슬 걸어서 다녀오기로 했다.
길을 모르겠으면 중간에 만나는 현지인들을 붙잡고 산 중턱을 가리켰다. 찰떡같이 알아듣고 길을 알려주었다. 걷다보니 더 이상 현지인들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단조로운 길이었다.
풍경이 꽤나 예뻐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는데 독일 남자 한명을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나에게 불상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나도 그곳으로 향하는 길이니 어쩌다가 함께 걸어가게 되었다. 사실, 노래를 들으며 잔잔한 경치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에게 "나는 내 갈 길 갈 테니 넌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만 하면 돼"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뺐다.
그는 아시아 투어중라고 하였다. 빠이에서 1주일간 머물렀으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모레 치앙마이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도시가 좋다고 했다. 한참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가 잠시 멈춰보라 하였다. 빤히 그를 쳐다보니, 그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작은 곤봉이 나왔다. 3일 동안 서커스 스쿨에서 곤봉 돌리기를 배웠단다. 3일 배운 것 치고는 곤봉을 꽤나 잘 돌리길래 박수를 쳐주고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으니, 신이 나서 가방 속에서 공도 꺼내 돌렸다. 귀여웠다.
불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빠이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참으로 조그마한 마을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고층빌딩이 하나 없었다.
생각 외로 불상의 크기는 상당했다. 불상의 뒤편으로 걸어가니 얼기설기 만든 사다리가 불상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 복숭아처럼 생긴 돌멩이가 있었는데, 아마 불상 꼭대기에 달려있던 것이 떨어진 듯하였다.
자리를 털고 마을로 돌아가려하니 독일 남자가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쓸어 모아 위로 올려 묶고는 불상과 비슷한 자세를 취했다. 독일 친구가 박수를 치며 엄지를 지켜 올렸다.
마을로 돌아와, 해먹에 누우니 무언가 뿌듯했다. 오늘은, 빠이에서 가장 많이 걸은 날이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