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팍세 - 2013. 12. 24 ~ 25
방비엔을 떠나 팍세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함께 방을 쓰는 형은 루앙프라방으로 갈지, 팍세로 갈지 고민을 하다가 나와 함께 팍세로 가기로 했다. 원래의 계획은 팍세에서 버스를 타고 시판돈을 가는 것이었으나, 버스 안에서 시판돈으로 가는 계획을 취소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귀찮았다.
아침 일찍부터 달리기 시작한 버스는 늦은 오후 비엔티엔에 도착했고, 야간 버스를 타고 다음 날 이른 아침 팍세에 도착했다.
팍세는 방비엔보다 상업적인 느낌이 덜했다. 거리에는 청소부만 보일 뿐 여행자들에게 간식을 팔기 위해 분주한 노점상은 보이지 않았다. 시내의 중심가에서 10여분 떨어져 있는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쉼터에서 강이 보였고 방은 굉장히 청결했다. 심지어 저렴하기까지 했다.
시판돈으로 가지 않기로 결정한만큼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다. 근처 로컬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후, 동네 구경도 할 겸, 외곽지역도 구경을 할 겸 방콕행 버스표를 사러 나갔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표시된 버스터미널까지 약 3Km 정도였으니 슬슬 걸어 다녀올만한 거리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작은 사원이 보였다. 잠시 구경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니 석가모니 불상 말고는 딱히 볼 게 없어서 나오려는데 10대로 보이는 스님 한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인구 대부분이 불교신자인 나라에서 '도를 아십니까?'는 아닐 듯 하여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눴다. 스님은 참으로 나에게 궁금한 점이 많았다.
'이름은 무엇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한국은 어떤 곳인지?, 라오스는 왜 왔는지?'
스님과의 대화가 즐거워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15분 정도 이야기를 하는데, 스님을 돕는 분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잠시 심부름 때문에 방문했을 뿐 자기는 다른 사원에 있다고 하였다.
혹시 스님이 머물고 계시는 사원에 방문해도 괜찮은지 물으니 꼭 오라며 주소와 주변 큰 건물을 설명해주고 떠났다.
스님과 헤어지고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나온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큰 규모의 장터였다. 인프라 개발이 막 진행중인 나라에서는 간이 버스 정류장이 터미널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기에 시장을 샅샅이 살펴봤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버스터미널을 찾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스님이 머물고 계신 사원과 시장과의 거리가 약 1Km정도였다. 동행하고 있는 형에게 함께 사원을 가자고 했으나 피곤하다며 먼저 숙소로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뚝뚝을 태워 형을 보내고 사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님이 나에게 말하길, "큰 호텔에서 길을 건너면 좁은 골목길 안쪽에 사원이 있어요"라고 말했으나, 호텔 앞에는 대형 전자상가가 늘어선 번화가였다. '이런 곳에 사원이 있을리가...' 생각했지만, 스님이 거짓말을 할리는 없다는 생각에 모든 골목길을 들쑤시고 다녔다. 그러나 결국 찾지를 못했다.
마지막으로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래도 찾지 못하면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몸짓 발짓으로 물어봐야 하는데 '사원'하면 떠오르는 몸동작이 합장을 하는 것이라 합장 자세를 취하니, '사바이디~'하면서 인사를 했다.
아, 라오스는 합장을 하면서 인사를 하지... 사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의 벽에 가로 막혀 결국 사원을 찾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가려 길을 건넜다. 뚝뚝을 타려는데, 뜬금없이 옆에 작은 사원이 보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바로 길 건너에 사원을 두고 한참 동안 다른 곳에서 사원을 찾았다. 그제야 길을 건너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억력이 나쁘니 몸이 고생이었다.
사원은 작았다. 안에 들어가니 동자승들이 나에게 뛰어오며 신기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스님의 성함이 캄파치라고 했기에 동자승에게 '캄파치?'라고 말하니 쪼르르 뛰어가서 작은 건물 안에 있던 스님을 불러왔다. 다시 만나게되니 참으로 반가웠다. 야외 벤치에 자리를 내어주고 마실 것을 가져다주었다.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변으로 조금 더 어려 보이는 스님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영어를 너무 잘하길래 어디서 영어를 배웠냐고 물어보니 학교에서 배우고 사원 내의 영어를 잘하는 스님에게도 배우고 있다고 하였다. 정말 영어에 관심이 많았다.
스님들은 한국 드라마 덕에 한국 또한 굉장히 많이 알고 있었다.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스님 한분이 동자승을 부르니, 몸을 베베꼬며 동자승이 내 앞으로 왔다. 그러고는 작은 노트를 내밀었다. '사인이라도 해달라는 건가?' 싶었는데, 노트를 열어보니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이름은 OOO입니다'라고 한글로 쓰여있었다.
깜짝 놀라 어디서 배웠는지 물어보니 드라마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인터넷을 통해 공부했다고 하였다. 어린 동자승이 존경스러웠다.
그는 연필을 들고 오더니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써달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둘째 가면 서러운 악필이지만, 여기서는 최고의 명필이기에 자신감을 갖고 동자승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것을 본 옆의 동자승들도 종이를 내밀더니 자신의 이름도 써달라고 하였다. 한 명 한명 정성스럽게 적어주니, 동자승들이 한글로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신나 사원 내를 뛰어다녔다. 정말, 뿌듯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스님들은 예불을 드리러 사원으로 들어갔다. 함께 예불을 드려도 좋다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으나, 밖에서 예를 표하겠다고 말하고 계단 밑에서 예불을 드렸다.
약 1시간의 예불이 끝나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스님들께 돌아가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캄파치 스님은 문 앞까지 배웅해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기분이 좋았다. 뚝뚝 기사들과 의미 없는 흥정을 하면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선선한 바람을 만끽하며 천천히 걸어서 돌아가기로 했다. 대형 식당에 들러 볶음밥을 먹고 나오니 길 건너편에서 반짝반짝 네온사인이 빛났다. 궁금한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작은 놀이동산이었다.
미니 바이킹, 미니 회전목마를 타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꼬치도 사 먹고, 물풍선 던지기 게임 두어 판을 즐겼다. 옛날 어렸을 때로 돌아간 듯했다.
오늘, 참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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