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딩, 다나큐 (2,300미터) - 2014. 1. 3
드디어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떠나는 날이 되었다. 헤리네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만난 포터와 택시를 타고 베시사하르행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침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정류장 앞 간이매점에서 짜이와 빵을 먹으면서 포터 로전과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 버스가 출발할 준비가 되었는지 경적을 울렸다.
베시사하르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순조롭게 달렸다. 창 밖 옅은 안개 사이로 산들이 보였다.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욱 안나푸르나가 더욱 신비한 곳이라는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약간의 흥분된 떨림을 만들었다.
오전 11시, 베시사하르에 도착했다. 라운딩을 시작하는 첫 출발점이어서 그런지 외국 트래커들이 몇몇 보였다. 우리의 원래 계획은 다라파니부터 트래킹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나 포터 로전의 추천으로 다나큐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자신이 수차례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했는데, 다나큐까지 풍경은 지루하며 볼 것이 없다고 했다.
2~3평 남짓한 공간에서 라운딩 퍼밋을 받고 12시쯤 출발하는 지프차를 예약했다. 포터의 지프 탑승비까지 지불하면 꽤나 비싼 금액이었으나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가볍게 먹고 지프니에 탑승했으나 역시, 바로 출발 할리가 없었다. 오후 1시가 되어서야 현지인들을 가득 채우고 베시사하르를 떠났다.
나는 마음 한편에 지프차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발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도 불만이었고, 승객을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출발한 후에도 마음 곳곳을 몇 바퀴 더 돌고 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1월 초는 네팔 라운딩의 비수기다. 원래 추운 고산을 오르는데 가장 추운 1월에 오르는 것이다 보니, 사람들이 찾아올 리가 없었다. 눈사태가 발생하여 종종 사람이 죽기도 하고, 길이 막혀 트래킹을 포기하고 중간에 돌아 내려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창 밖을 내다보는 몇 시간 동안 사람을 보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렇게 몇 시간 가다 보니 점점 길이 좁아졌다. 딱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도로 폭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은 낭떠러지였다. 떨어지면 무슨 방법을 써도 죽겠지만 안전벨트를 잡은 내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차바퀴가 50cm만 삐끗해도 우리 모두 황천길 동지가 되는 것이지만, 차 안에서는 흥겨운 음악소리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몇몇은 대수롭지 않은 듯 평온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긴, 우리의 목숨은 어차피 운전기사가 붙들고 있는데, 걱정을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올라가다가 위험구역이 나오면 운전기사가 승객들을 내리게 한 후 길을 건너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저 멀리 안전한 지역으로 가서 그의 운전 솜씨를 관찰하니 정말 입이 딱 벌어졌다.
수많은 바위들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데 진짜 곡예사가 따로 없었다. 위험천만한 바위틈을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았으며, 출발할 때 기사에게 품었던 불만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밤이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첫 출발지인 다나큐에 도착했다. 지프차에서 짐을 내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쏟아졌다. 다나큐가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몰라도 주변의 게스트하우스들은 불빛이 꺼져있었다. 불빛이 켜진 단 하나의 게스트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손님이라고는 나와 형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인 내외와 옹기종기 앉아 식사를 같이 했다. 정성이 담긴 음식과 함께 럭시라는 네팔의 고량주도 한잔씩 나눠 마셨다.
현재 해발 2,300미터. 태어나서 가장 높은 장소에 도착했다. 앞으로 걸어갈 한걸음마다 나에게 역사적인 기록이 될 첫날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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