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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세계 일주

[세계일주 여행기, 네팔] #30 차메에서 2명의 한국인을 더 만나다.

by 곰같은 남자 2021. 8. 29.
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딩, 차메 (2,740m) - 2014. 1. 4

 

어젯밤 아침식사를 미리 예약해놓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 전 아침 식사를 했다.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었고, 밥을 먹자마자 짐을 쌌고, 짐을 싸자마자 산행을 시작했다. 

아직은 고도가 낮았기 때문에 평지와 다르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에도 하루에 6~7시간은 매일 걸어 다녀야 했기에 산행 자체도 그다지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산행을 시작할 때 아무래도 해발 2,500미터이니 조금 쌀쌀하지 않을까 싶어 옷을 두툼하게 입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산행에 적합한 옷들이 아니다 보니 통풍이 안되어 땀이 옷 안에 고였다. 어쩔 수 없이 가볍게 옷을 갈아입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커다란 군용 가방을 멘 사람이 혼자서 걷고 있었다. 살짝 다가가서 얼굴을 확인해보니 동양인이었다. 그가 먼저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한국인이었다. 그도 혼자 걷는 게 심심했는지 자연스럽게 우리와 동행을 하기로 했다. 산행 하루 만에 인행이 2명에서 3명이 되었다. 

 

그는 소 농사를 짓고 있으며, 10년째 산악회 부회장이라고 소개했다. 아주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였는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래킹도 2번 다녀왔으며,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래킹은 이번이 3번째라고 하였다. 

정말 심한 사투리를 썼는데 가끔씩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용 흐름상 유추해서 알아들어야만 했다. 대화를 할 때마다 시골의 순박한 형님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참으로 구수했다.

메고 다니는 거대한 군용 가방에는 없는 게 없었다. 나중에는 비상식량으로 챙겨 왔다며 비빔밥 6개가 나왔을 때 우리를 모두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체력도 워낙 좋아서 25 킬로그램 정도 되는 가방을 짊어졌음에도 한 번도 뒤로 쳐진 적이 없었다.

 

오후 2시 30분쯤 차메에 도착했다. 다음 마을까지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만 첫날부터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다. 고산 적응도 할 겸 이른 시간 산행을 마쳤다. 한겨울이 되면 산에서 지내는 게 매우 척박하기 때문에 롯지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포카라로 내려가서 생활한다고 들었는데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마을을 돌아다녔다. 구석에서는 아이들이 추운지 불을 펴놓고 옹기종기 앉아있었고, 어른들은 당나귀한테 먹이를 주고 있었다. 

 

마을에서 안나푸르나 2봉이 보였다. 볕이 잘 드는 커다란 바위에 앉아 한참을 구경했다. 정말 정말 말도 안 되게 높고 웅장했다. '저 꼭대기에 오른 사람은 무슨 생각이 들까?', '내 평생에 저 위에 깃발을 꽂아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들이 지나쳐갔다. 

해가 지면서 안나푸르나 2봉은 자신의 모습을 순간순간 바꾸어 나갔다. 점차 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산이 얼마나 높고 뾰족한지 지나가는 구름마저 갈라버렸다. 언제 다시 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을까? 갑자기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졌다.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산을 바라보다가 롯지로 돌아왔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숯불 앞에서 몸을 녹이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이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하고 쳐다보니 한국인 한 명과 네팔인 포터가 들어왔다. 

참으로 신기했다. 트래킹을 하며 만난 사람이 단 2명이었는데 모두가 한국인이라니. 더욱 기분이 좋았던 것은 혼자 말동무 없이 포터 역할을 하고 있는 로전의 친구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꽤 긴 시간 동안 심심하지 않을 거 같았다.

 

저녁을 먹고 그도 함께 숯불 앞에 앉았다. 건축일을 하다가 일이 너무 지겨워서 네팔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몇 번을 이야기해도 사표 수리를 해주지 않아 그냥 무작정 비행기 타고 날아왔다고 했다. 직장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그리 반가워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 보였다. 

 

그도 과거에는 나처럼 세계일주를 준비했었던 여행자라고 했다. 친구와 같이 떠나기 위해 약 1년간 돈을 열심히 모았지만 갑작스러운 친구의 변심으로 결국 세계일주를 떠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때 혼자라도 떠났어야 하는 아쉬움이 지금 40대가 되어도 마음 한편에 존재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세계일주를 하는 내가 더욱 부럽다고 하였다. 

 

산행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한국인 트래커 4명, 네팔 포터 2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이 만들어졌다. 10일 이상을 함께 지내야 할 사람들이었기에 깊은 대화를 나눌 앞으로 날들이 더욱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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