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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세계 일주

[세계일주 여행기, 네팔] #43 네팔의 성지로 가는 것이 이토록 험난하단 말인가.

by 곰같은 남자 2022. 2. 8.
네팔, 룸비니 - 2014. 1. 17

 

오매불망 기다렸던 인도 비자가 나오는 날이었다. 자기네들이 얼마나 잘났다고 입국 비자가 그리 까다로운지는 모르겠으나 그 귀찮은 작업들을 기꺼이 처리하면서 꾸역꾸역 인도로 기어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인도가 확실히 매력적인 여행지임은 분명했다. 저녁 4시 반까지만 주네팔 인도 대사관으로 가면 되기에 오늘 밤 버스를 타고 카트만두를 떠나 룸비니로 향하기로 했다. 카트만두에는 오래 있고 싶지가 않았다.

 

로컬 버스정류장까지는 거리가 꽤 되었으나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사람들 구경을 할 겸 슬슬 걸어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자 거리를 벗어나 현지인들 마을로 들어서니 공업지구가 펼쳐졌다. 자전거, 자동차, 오토바이 수리점이 모여있었고 알 수 없는 거대한 기계 장치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상한 길로 들어서 넓은 공터에 들어섰는데 온갖 잡동사니들을 땅바닥에 펼쳐놓고 팔고 있었다. 큰 장날인 듯하였다. 전부터 청바지를 하나 사고 싶었기에 좌판을 둘러보며 골라봤지만 마땅히 사고 싶은 제품은 없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청바지 하나를 찾아 가격을 물어보니 우리나라 돈으로 2,500원 정도 했다. 냄새도 나지 않고 제품 퀄리티도 괜찮아 자리에 입어봤지만 사이즈가 너무 커서 구매는 하지 못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호객꾼들이 뛰쳐나왔다. 다들 연신 "포카라~, 포카라~"만을 외쳤다. 사람들을 떨쳐내며 창구로 걸어가는데 한 명이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어디를 가는지 계속 물었다. 룸비니를 간다고 하니 자신의 회사로 나를 질질 끌고 갔다. 호구처럼 끌려가 가격 후려치기를 당할 수는 없으니 주변 현지인 몇 명에게 룸비니행 버스 티켓을 물어봤다. 덩치가 좋은 아저씨가 가격을 알려주었는데, 너무 정직하게 가격을 이야기해줬는지 호객꾼이 아저씨에게 화를 냈다. 

보통은 깨갱... 하겠지만, 아저씨는 달랐다. 덩치만큼 성격이 불같았는데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목청으로 한참을 뭐라고 하더니 호객꾼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제대로 된 가격으로 버스 티켓을 사는 것까지 도와줬으니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내가 버스 티켓을 사는 동안 호객꾼이 씩씩거리며 아저씨와 나를 흘겨봤지만, 다가오지는 못했다. 

 

화난 얼굴을 하고 있는 네팔 전통 공예 마스크
네팔 공예 마스크

숙소로 돌아와 로비의 소파에 누워 만화책을 읽었다. 한 6권쯤 읽었을 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뭐지? 하고 쳐다보니 함께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했던 공무원 형이 입구에 서있었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잠시 형에게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한 후 인도 대사관으로 뛰어가 비자가 붙어진 여권을 받아왔다. 총 3번의 방문 끝에 받아온 결실이었다.

룸비니행 버스 출발시간은 밤 8시였기에 형과 함께 근처 식당에서 달밧을 먹었다. 나는 맥주를 한 잔 시켜서 마셨지만, 형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지 오늘은 쉬겠다고 하였다. 에베레스트 한 병을 마시고 시계를 보니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헤어지다니 아쉽지만, 항상 마주하는 이별이고 언제나 겪는 헤어짐이기에 한 번의 포옹을 한 후 덤덤하게 헤어졌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니 운이 없게도 내 자리는 맨 뒤의 5자리 중 한자리였다. 그런데 이미 자리에 5명이 앉아있었다. 뭔가 잘 못되었다 싶어서 표를 보여주니 서로 엉덩이를 밀착시키며 여자 한 명이 앉기도 힘든 공간을 내어주었다. 정중한 말투와 표정으로 나와달라고 하니 계속 엉덩이를 밀착하면서 좁은 자리에 앉으라 이야기했다. 짜증을 내면서 나오라고 하니까 그제야 한 명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내 오른쪽에 앉은 3명과 그 바로 앞 2명이 친구 사이인 듯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주 촉새 같은 놈이 한 명 있었는데 입에 모터가 달렸는지 쉬지도 않고 쫑알쫑알 떠들어댔다. 정신이 좀 이상한지 말을 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웃통도 벗었다.

그러려니 하고 핸드폰에 저장된 노래를 들으려고 하니 바로 옆자리 녀석이 내 허벅지를 툭툭 쳤다. 그러고는 들고 있는 과자를 내밀었다. 거절하기도 미안하여 과자를 하나 집은 순간, 폭풍 같은 질문이 시작되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나이는 어떻게 되냐?, 네팔은 어떻냐?, 룸비니는 왜 가는 거냐?, 네팔에 온 이유는 뭐냐?,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냐?,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냐?, 듣고 있는 음악은 뭐냐?, 나도 한국 노래 들어보고 싶은데 들어봐도 되냐?" 청문회에 온 줄 알았다.

 

자리가 너무 좁아 짜증이 한계치까지 치솟은 상태였지만 웃으면서 다 대답해주었는데 갑자기 내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훅 가져가면서 이게 아이폰이냐 물었다. 더 이상 상종을 하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핸드폰을 돌려받고는 그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 왼쪽에 있는 인간은 사람 두 개를 포개 놓은 크기의 짐을 들고 탑승하여 내 자리에 그의 엉덩이가 이미 반쯤이나 침범한 상태였다. 깨워서 제발 짐을 짐칸에 넣고 오라고 하고 싶은데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자서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다. 마치 찌그러진 캔과 비슷했다. 

 

버스 자체도 최악이었다. 창문이 보이지도 않고 너무 어두컴컴한 밤이라 밖이 보이지는 않았는데 도대체 길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공중을 날아다녔다. 한두 번 천장에 머리를 부딪힌 게 아니었다. 자다가 천장에 부딪혀 혀라도 깨물까 봐 제대로 잠도 못 잤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폭주기관차처럼 달렸다. 

오른쪽 앉은 3명은 공중에 붕붕 뜰 때마다 벗은 옷을 흔들면서 소리를 질렀고, 왼쪽 찌그러진 캔 같은 녀석은 진짜 죽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잠만 잤다. 

 

왼쪽, 오른쪽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들과 분노의 폭주 기관차 같은 버스 덕택에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역시... 불교의 성지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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