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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세계 일주

[세계일주 여행기, 네팔] #44 대성석가사에서 만난 독특한 여행자

by 곰같은 남자 2022. 2. 27.
네팔, 룸비니 - 2014. 1. 18

 

해도 뜨지 않은 새벽,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골목 어딘가에 덩그러니 내려졌다. 운전기사에게 이곳이 정말 국제 사원 입구가 맞는지 몇 번을 물어봤으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는 떠나버렸다. 같이 내린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도 없었다. 가방을 열어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 입었다. 어두운 길을 밝힐 가로등 하나 없어서 핸드폰 불빛에 의존한 채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의 국제 사원 지구는 정말로 음산했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나뭇잎끼리 비비는 소리가 스산함을 더했다. 한국 스님들이 운영하는 대성석가사의 위치를 모르니 때문에 정처 없이 길을 걸을 뿐이었다. 감에 의존하여 보이는 대로 걸었다.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사원인 듯했다. 안으로 들어가 한국 절을 찾는다고 하니 길을 알려주었다. 그다지 먼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아서 호기롭게 사원을 빠져나왔지만 생각 외로 규모가 크고 길이 복잡했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멀리서 목탁 소리가 들렸다. 한국 절인지, 외국 절인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한참이나 비를 맞을 상태였기에 추운 몸을 녹이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도 목탁 소리가 들린 절은 대성석가사였다.

 

대성석가사
대성석가사

첫 모습에 매우 실망했다. 바닥에는 공사 자재들이 굴러다니고 제대로 지어지지 않은 회색빛의 우중충한 건물이 크게 서있었다. 누가 쓰다가 버린 건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후원금을 받을 때마다 공사를 해서 지금의 형태로 서있는 것이라 했다. 

나보다 먼저 온 몇몇의 사람들을 따라 아침 공양을 받고 며칠 머물겠다고 이야기하니 숙소를 배정해주었다. 내가 들어간 방에는 먼저 온 여행자가 한 명 있었는데 눈망울이 초롱초롱했으나 얼굴은 산적같이 생겼었다. 우락부락 무서운 얼굴이기보다는 정리되지 않은 수염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는 약 1년 정도 아시아를 여행하는 도중 파키스탄에 들렀는데, 여행 금지 구역에 들어갔다가 폭탄 테러를 경험하고 더 이상 파키스탄에 있는 것이 무서워 급하게 인도를 거쳐 룸비니로 온 여행자였다.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는 것인지 룸비니에서 꽤 오랜 시간 머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그와 친하게 지내던 다른 한 명의 여행자는 키가 작았으나 얼굴이 매우 잘 생겼었었다. 그 또한 매우 독특한 면이 있었는데, 인도의 '레'를 가겠다는 목표로 한 겨울에 인도에 방문했다고 하였다. 한겨울에는 육로가 막히는 일이 있어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보통인데, 그는 비행기를 타고 '레'로 가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단다.

델리에서 레를 가는 버스회사를 찾았으나 한 군데도 없어서 자신이 직접 운전기사와 버스 한 대를 대여하여 레를 다녀왔다고 했다. 운전기사와 단둘이 갔는데, 가면서 눈에 버스가 몇 번 빠져서 삽으로 일일이 팠던 게 기억난다 하였다.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렇게 레를 방문한 후 다시 델리로 돌아와 아그라의 타지마할도,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도 보지 않고 바로 룸비니로 온 여행자였다. 그에게 도대체 왜 룸비니에 그렇게 급하게 왔는지 물어보니, "그냥 오고 싶었어요."라고 답했다. 그게 끝이었다. 

 

카트만두에서 룸비니로 오는 버스에서 잠을 거의 자지 못하여 낮잠을 잤다. 한참 후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가보니 비는 그쳤고 해가 떠있었다. 점심 공양 시간도 지나서 그냥 굶을 생각으로 방에 있는데 두 명의 여행자가 밖에 나가서 짜이 한잔 마시고 오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길도 익혀둘 겸 그들과 함께 나왔다. 

사원 구역 밖으로 나오니 일반 네팔인들이 사는 마을이 나왔다. 아무 가게에 들어가 차와 사모사를 먹으며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국제 사원 지구 산책을 하기로 했다. 내일 따로 시간을 내어 각국의 절들을 구경할 생각이었기에 길을 대충 익혀두었는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다.

 

국제 사원 지구 호수와 날아가는 새떼
호수

대성석가사에서는 아침 공양을 받기 전 30분 예불 시간이 있으며, 저녁 공양이 끝난 후 1시간의 예불 시간이 있었다. 강제로 참여할 필요는 없지만 싯다르타가 태어난 곳까지 왔는데 예불 경험해보지 않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두 명의 여행자도 꼭 예불에 참석하는 것을 추천했기에 저녁 식사 후 함께 참선을 해보기로 했다. 어디다가 절을 하는지도 모르고 염불도 외울 줄 모르기 때문에 괜히 남을 흉내 내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집중했다. 

기분이 묘했다. 침착해지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몸이 땅으로 내려가듯 편했다. 눈을 뜨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 느끼는 기분에 약간의 카타르시즘을 느꼈다. 이후 매일 아침과 저녁 참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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