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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짧은 여행

[12' 인도 여행] #19 바라나시에서 만난 한심한 남자

by 곰같은 남자 2022. 7. 12.
인도, 바라나시 - 2012. 2. 18

 

나보다 며칠 먼저 왔던 누나가 철수보트의 철수와 친하기는 친했나보다. 오늘 낮에 떠나는 누나를 위해 철수가 점심 식사를 대접한다며 누나와 함께 우리를 초대했다. 한국에서도 집들이를 할 때면 조그마한 선물을 하나씩 사가는데, 인도라고 안사 가기는 애매하였다. 어제 술을 사마시고 남은 돈에 조금씩 더 보태어 과일과 아이들이 먹을 과자를 사서 방문했다.

몸이 좋지 않아서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둘째 아들이 우리를 반겼다.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며 함께 놀아주는 동안 철수의 와이프는 점심식사로 탈리를 준비했다. 맛도 뛰어났을 뿐 아니라 정성이 듬뿍 담긴 식사였다. 특히나 디저트로 내어준 라이따?(발음을 잘 모르겠다)라는 이름의 요플레를 주었는데, 내가 먹어본 인도의 요플레 중 단연 최고였다. 

 

 

누나는 식사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델리로 떠났다. 곧이어 다른 친구들도 바라나시를 떠날 때가 되었기에 근처 라씨 집에서 라씨를 마시면서 그동안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바라나시에는 유명한 라씨 집이 두군데 있었는데, 블루라씨와 시원라씨였다. 모두 다 한국인들에 사랑받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시원라씨에서 마시기로 하였다. 

어느덧 그들도 오후 늦은 시간 바라나시를 떠나게 되었고, 그들이 사라지니 다시 바라나시에는 나와 동생만이 남았다. 아쉬움이 짙게 남았지만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이었다. 

 

묘한 바라나시에서 묘한 사람이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시는 내가 딱딱한 가트의 돌바닥 위에 앉아 멍하니 강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 매력에 사람들이 바라나시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몰을 보기 전까지 별 말없이 동생과 나는 강가의 흐르는 강물을 쳐다보았다.

 

갠지스강 한쪽에 정박해둔 보트 위에 하의만 입은채로 보트의 옆면을 손으로 만지고 있는 남자
갠지스강에 정박한 보트 위에 있는 남자

일몰의 강가를 느끼기 위해 철수보트에 다시 올라탔다. 귀여운 아이에게 디아도 구매했다. 강 한복판에서 소원을 빌며 띄울 생각이었다. 천천히 보트는 나아갔고, 노가 물을 가르는 소리와 강가에 비친 일렁이는 햇살, 저 멀리 떨어지는 석양까지 모든 게 아름다웠다. 

보트 안에는 나와 동생을 포함하여 총 9명의 한국 사람이 있었다. 철수는 열심히 한국말로 인도인들이 강가를 얼마나 신성시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우리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표현으로 문화적 차이를 메꿔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설명이 끝나고 디아에 불을 밝킨 후 조심스럽게 강가에 띄워보냈다. 강가에 디아를 띄우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나 역시 자그마한 소원을 빌었다. 

 

그때 갑자기 보트의 뒷편에서 큰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길래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니 어떤 남자 한명이 디아를 강가에 띄우다가 강물이 손에 조금 닿았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이 개똥물에 손이 닿았다며, 손이 썩는거는 아니냐며 가방을 주섬주섬 뒤져 손세정제로 손을 닦고 물티슈를 꺼내 또 닦고, 휴지를 꺼내 또 닦았다. 

더러운 물은 맞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행동해야하나 싶었다. 방금까지 인도인들의 문화를 이해해달라며 강가의 신성함을 이야기했던 철수 입장에서는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였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고작 더러운 물이 손에 닿은 것 정도는 내색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를 보며 느낀 것은 단 하나였다. 

'한심하다'

 

보트에 내려 사람들이 떠난 후 철수에게 사과를 했다. 그는 괜찮다며 밝은 미소를 보냈지만, 괜스래 마음에 걸렸다. 내일 다시 보트를 타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후 저녁식사를 하러 움직였다. 바라나시에서 만났던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피제리아라는 식당을 가기로 했다.

시간이 애매하여 자리가 없었기에 잠시 기다리겠다 이야기했는데, 종업원의 태도가 매우 독특했다. 굉장히 무시하는 듯한 말투와 눈빛으로 시종일관 우리를 대했다. 빈 자리가 나서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는데 우리가 뭐만 주문하려고 하면 지금 주문이 안된다고 하였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하고는 다른 음식을 시키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자리에 앉은 테이블에서는 우리에게 없다고 한 음식의 주문을 받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했는지, 직원들이 음식을 서빙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다. 

기분이 나빴다. 주문을 받았던 종업원을 불러 상황을 설명해보라고 하니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과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은, 어쨌든 음식은 주문이 불가능하다였다.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7대의 보트가 갠지스강가 쪽에 정박되어있고, 촛불을 띄운 디아가 일렬로 강가 위에 띄워져있는 사진
갠지스강 한쪽에 정박되어있는 보트와 디아 행렬

가트로 돌아와 강가를 바라보니 누군가가 배에 탄 채로 끊임없이 디아를 띄우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프랑스 여자가 디아 1,000개를 사서 띄우고 있다 하였다. 디아 위의 작은 촛불이 흘러흘러 메인가트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서 1,000개씩이나 디아를 띄우고 있는 것일까. 그녀가 원하는 소원은 1,000개일까. 1개일까.

결국 그녀의 마지막 디아가 띄워지는 모습은 보지 못한채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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