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룸비니 - 2014. 1. 19
아침 공양과 참선 시간을 마친 후 국제 사원 지구 내의 사원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점심 공양 시간 전에는 돌아올 생각이었기에 걸어서 다니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자전거를 빌려 많은 사원을 돌아다녔지만 기억에 특별히 남는 사원은 없었다. 아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사진도 거의 찍지 않았다.
뭐랄까. 각국에서 누가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사원을 지었는지 과시하는 일종의 경연장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국제 사원 지구와도, 자연과도 조화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묘한 반감이 들었다. 차라리 아직 다 완성되지 않은 대성석가사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아직 다 보지 못한 타국의 사원도 찾아가 볼까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사원 지구 끝에 보이는 하얀색 스투파만 보고 오기로 했다. 세계의 평화를 상징하는 스투파 가운데에는 황금색의 아기 불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너무나 하얀 스투파에 누가 될까 더러운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랐다. 하늘을 가리키는 아기부처상을 한 바퀴 돈 후 국제 사원 지구를 바라보니 이보다 더 평화로운 풍경이 있을까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 문 앞에 의자를 꺼내 두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 두 시간여쯤 읽었을 때 여행자 두 명이 함께 짜이를 마시자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원래의 계획은 정말 단순하게 짜이만 마실 생각이었으나, 어느새 우리의 손에는 맥주병이 하나씩 들렸다. 저녁 참선을 드릴 예정이었기에 간단하게 목만 축이고 저녁 공양시간에 맞춰 대성석가사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한국에서 성지순례를 온 단체 관광객 무리가 있었다. 네팔 초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이라도 왔는지 10살 전후의 아이들도 사 원 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생기가 사원에 퍼졌다. 이들도 야단법석 시끄럽게 돌아다니는 일이 없었고, 모두가 행동에 조심성이 가득했다.
딱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이 있었다면, 뜨거운 물을 너무 펑펑 사용하여 자기 전에 샤워한 나는 아주 차가운 물로 샤워를 했다는 점뿐이었다.
저녁 참선이 끝난 후 처마 끝에서 땅으로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자박자박 흙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듣기 좋았다. 룸비니 입구에서 느꼈던 스산한 바람소리는 운치 있는 기분 좋은 소리로 바뀌어있었다.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적당히 소란스러워 아름다운 배경음악이 되었다. 그날 밤늦은 시간까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