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딩, 야크카르카 (4,110m) - 2014. 1. 7
마낭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4,000미터가 넘는 지역을 등산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트래커들의 등산 실력, 체력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마낭에서 이틀을 머물며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나와 함께 다니는 형들의 일정이 촉박한 편이었고, 나도 체력적으로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기에 마낭에서 하루만 머물고 바로 등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또한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인 토롱라 길이 겨울에는 종종 막히기 때문에 서두르기로 했다. 이틀 후면 도착할 텐데 아직까지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은 없었다.
길의 푸르름은 사라졌다. 회색빛 땅이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 멀리를 바라보면 하얀 설산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마낭에서 야크카르카까지 약 10Km 정도 걸리는 길이었으나 계속해서 고도를 높여갔기 때문에 휴식을 넉넉하게 취하며 움직였다.
이른 아침 출발하여 야크카르카에 도착하니 오후 3시쯤이었다. 역시나 모든 롯지가 문을 닫고 있었고 단 하나의 롯지만이 열려있었다. 시간도 애매하고 무리하게 산행을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오늘의 산행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나는 형들이 갖고 온 미니 버너를 이용해 물을 끓여서 차를 계속 마셨다.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었다. 형들은 아직 몸이 팔팔한지 밖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한 5분 했으려나, 다들 숨을 헐떡이며 더 이상 못 뛰겠다 포기를 하고 식당에 모여들었다. 형들이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한쪽 구석에 앉아 책을 읽으며 저녁을 기다렸다.
한 시간여쯤 책을 보다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 사람 한 명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포스가 남달랐는데, 등산 스틱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꼽고 동네 뒷산 오르듯이 롯지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오더니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한국 사람이었는데, 흡사 산적 같았다.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포카라에 도착해 네팔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게 떠올랐다. 안나푸르나 트래킹 동행을 모으기 위해서였는데 그때 나에게 연락이 온 사람이었다. 출발 날짜가 맞지 않아 서로 연락이 끊어졌는데 이곳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카톡 사진에도 수염이 가득한 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이었는데, 카톡 사진과 실물 싱크로율이 100%였다.
그는 공무원이었는데 과거 이미 2년간의 세계일주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세계일주가 끝난 후 그는 방랑을 접고 한국에 정착해 안정적으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고 하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트래킹이 끝나고 인도 여행 중 강도를 만나 납치가 되었다고 했다. 모든 물건을 털리고 겨우 살아 나왔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인도 여행을 다 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다양한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도 우리와 함께 이동하기로 하여 한국인 다섯, 네팔인 2명의 파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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