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딩, 따토파니(1,190m) - 2014. 1. 10
따토파니로 내려가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했다. 그러나 우리만 분주했나 보다. 전날 밤 미리 예약해둔 아침식사는 우리가 눈을 뜨고 나서야 한참 후에 준비되었다. 버스 시간에 늦을까 허겁지겁 먹고 어제 알아본 버스 시간에 맞춰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정말 우리만 분주했나 보다. 버스는 시간에 맞춰서 오지 않았고, 1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주변 현지인들한테 물어보니 자기네들도 모른다며 느긋하게 기다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길 한복판에 누워 책을 읽었고, 형들은 그늘 밑에 앉아 쪽잠을 청했다.
버스는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왔다. 다른 곳부터 사람을 태우고 왔는지 버스 안에는 승객들이 한가득이었다. 어제 분명 가사에서부터 버스가 운행된다고 들었는데, 이미 승객이 많은 것을 보면 좀솜에서도 따토파니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는 것 같았다.
버스는 요동을 쳤다. 공간이 좁아 앞좌석에 계속 무릎이 부딪쳤고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에는 엉덩이가 의자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었다. 의자에 앉아 가는 건지, 하늘을 날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한참을 공중 부양한 채로 달리는데, 우리의 산행을 도와줬던 네팔 포터 빈과 로진이 따토파니에 도착했다면서 우리에게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아쉽지만 헤어질 시간이었다. 건축일을 하던 형은 자신의 포터였던 빈과 애정이 많이 들었는지 이것저것 선물을 한 보따리 꺼내 챙겨 그를 보냈다.
따토파니는 1,190미터에 있는 마을로 그리 낮은 높이는 아니나, 우리에게는 평지와 다름없었다.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롯지들 대부분이 운영 중이었고 기념품 상점이나 액세서리 가게들도 많이 보였다.
우리는 빈과 로진이 추천해준 숙소에서 묵기로 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렌지가 열린 나무들이 빽빽한 롯지였다. 유명한 숙소인 듯 사람들도 많았고 관리도 그 어느 곳보다 잘 되고 있었다.
네팔어로 따토파니의 따토는 뜨거운이란 뜻이며, 파니는 물이라는 뜻이었다. 합치면 뜨거운 물. 바로, 온천이 이곳에 있었다. 우리 모두 그간 쌓인 피로를 풀 겸 온천으로 향했다. 옷을 훌렁훌렁 벗고 한 손에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몸을 녹이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우리 말고도 라운딩을 끝낸 많은 외국인, 포터, 현지인들이 뒤섞여있었다. 모든 인종을 냄비에 넣고 끓이는 수프 같았다.
우리 옆에는 미국 남자와 캐나다 여자가 있었다. 1년 반 전에 에콰도르를 여행하다가 만났는데 1년 동안 주기적으로 만나 함께 여행을 하는 사이라고 했다. 심지어 캐나다와 미국을 오가며 각자의 집에 자주 방문한다고 하였다. 누가 봐도 커플처럼 보였고 사랑하는 사이처럼 보였으나, 둘은 강하게 부인했다. 귀여웠다.
형들이 먼저 숙소로 돌아간 후 20여분을 더 쉬다가 숙소로 돌아왔는데 한 명도 보이지가 않았다. 어디 놀러 갔나 싶어서 읽다만 책을 꺼내 롯지 레스토랑에서 읽고 있는데 건축가 형이 숙소로 돌아와서 맥주를 한잔 하자고 하였다. 읽던 책을 마저 읽고 30여분 후에 찾아가니 맥주집이 아니라 이상한 육포를 파는 가게였다.
맥주를 마실만한 곳은 아닌 것 같아서 어찌 된 일인지 물어보니, 공무원 형이 마을 구경을 하다가 현지 아주머니들이 고기 손질을 하는 것을 보았단다. 궁금한 마음에 가격이 얼마인지 물었는데 1Kg에 500 루피에 판다고 하여 그 자리에서 2Kg을 주문했다고 하였다. 고기를 구워주기까지 하는 조건으로 돈을 지불하고 남자 6명에서 미친 듯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먹는데 술이 빠질 수 있을까. 고기 가게에서는 술을 팔지 않아서 옆 작은 간이매점에서 맥주를 쓸어오다시피 마셨다. 술을 도대체 얼마나 먹은 건지 정신이 없을 만큼 마셨고, 우리가 취해갈수록 매점 사장님은 입꼬리가 귀에 걸려갔다.
술을 마시면서 다음 일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6명 모두 푼힐을 가는 것은 합의가 되었고, 지리 선생님형과 건축가 형만 ABC 트래킹을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내일 따토파니에서 떠날지, 아니면 하루 더 머물다 갈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나는 슬슬 산이 지겨워져서 빨리 움직이기를 바랐지만 형들은 이왕 쉬는 김에 하루 더 쉬자고 하였다. 조금 더 고민해본다고 하고 술을 마셨는데, 몇 잔 마시니 느낌이 왔다.
"아 오늘 만취하겠구나. 내일 못 가겠다. ^^"
이른 낮부터 벌인 술판은 늦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갈 생각을 안 하니 고기 가게 아주머니가 먼저 다가와 이제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술 파티를 여기서 끝낼 수는 없었다. 옆 매점이 문을 닫기 전에 남은 맥주를 전부 쓸어 담은 뒤, 숙소에서 한잔 더 하기로 하였다.
다행히도 미니 버너의 가스는 충분했고 산행 중에 남은 라면과 군용 도시락도 넉넉했다. 숙소 마당에 널린 게 오렌지니 나무를 기어올라가서 오렌지도 넉넉하게 땄다. 이날 밤 하루 종일 술을 먹고 모두 맛이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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