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방비엔 - 2013. 12. 22
누가 뭐라 해도 방비엔의 꽃은 튜빙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시즌'이지만.
12월의 방비엔은 어딜 가나 사람이 별로 없었다. 블루라군에도, 마을에도 정말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튜빙을 할 때에도 사람이 별로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했다.
방비엔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우리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정말 튜브만을 타기 위해 튜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정한 튜빙의 목적은 강을 따라 양 옆으로 늘어져 있는 노상 술집에서 파티를 즐기기 위함이다.
튜브를 타고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가고 싶은 노상 술집이 있으면 손만 들면 되었다. 물가에 나와있는 술집 직원들이 신호를 받고 페트병이 달린 긴 줄을 내 쪽으로 던졌다. 어찌나 정확한 지 잡지 못할 일이 없었다. 줄을 잡으면 직원들이 튜브를 끌어당겼다. 튜브에서 내려 노상 술집으로 입장하면 튜브 파킹까지 그들이 해주었다.
노상 술집마다 다르지만 농구, 배구, 족구 등 각종 구기운동을 할 수 있는 코드와 술 게임을 할 수 있는 잡다한 게임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고, 한쪽에는 술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
방비엔의 시내 슈퍼마켓보다는 당연히 비싸지만 약 2,000원 정도면 맥주를 한 병 살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진탕 놀다가 재미없어지면, 다시 튜브를 타고 강물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술을 한잔 하고 싶다면 그저 손만 들면 되었다.
과음을 하고 물놀이를 하는 것은 분명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강에 빠져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소문으로 치부할지, 나한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니 술을 절제할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였다.
튜브 대여 비용은 약 60,000킵 정도로 저렴했다. 출발 전 구명조끼를 입고, 근처 노점에서 방수팩을 하나 급하게 구매했다. 썽태우에 태워 강의 상류에 데려다주었다. 함께 간 서양인들은 내리자마자 신나서 미쳐 뛰어갔다. 나와 함께 간 한국인 형과 함께 조심스럽게 튜브에 몸을 눕혔다.
기분이 좋았다. 햇살도 따사롭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적시는 물도 시원했다. 우리의 목적지인 노상 술집이 5분 만에 나타났다. 우리는 미리 짝수 술집만 가기 약속했으므로, 과감히 1번은 지나쳤다.
5분을 더 가니 2번 술집이 보였다. 손을 들어 그들의 안내를 받아 술집 안으로 들어가니 서양 남자 2명뿐이었다. 정말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 온 김에 맥주를 한 병씩 마시고 농구를 한 게임 즐겼다. 그러나 재미가 없었다.
다시 튜브를 타고 이동하니 곧 3번 술집이 나왔으나 통과했다. 속으로 벌써 술집이 3개나 나왔으면 도대체 몇 번째가 끝일까 싶었다. 하지만 4번째로 마주한 술집이 마지막이었다. 튜브에서 슬쩍 안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사람이 거의 없었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그냥 지나고 말았다. 노상 술집 투어가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제부터는 아무 생각 없이 강물 위를 떠다닐 뿐이었다. 노래를 들을까 하여 핸드폰이 들어있는 방수팩을 보니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다급하게 방수팩 안의 물을 빼냈지만,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았다. 함께 넣어둔 돈도 다 젖었다. 슬슬 몸속에서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에 너무 오래 있었는지 슬슬 몸이 추워졌다. 유속은 점점 느려지니 더욱 재미가 없어졌고, 손으로 노질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물에 절여진 핸드폰을 보니 짜증이 폭발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아직 남아있었다. 강물 코너 부분에서 갑자기 유속이 빨라졌는데 물이 너무 얕아서 엉덩이가 돌부리에 부딪혔다. 꼬리뼈가 부서지는 줄 알았다. 엄청난 통증을 견디며 튜브 위에 널브러져 쓰러졌다.
더 이상 튜브를 타고 싶지 않았다.
아무런 의지도 없는 이때, 100m쯤 앞쪽에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 쏟아지는 햇살을 즐기는 자세로 아주 여유롭게 튜브를 타고 있었다.
'아... 그래 모든 건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지. 나도 좀 더 여유롭게 햇살을 즐기자...'는 무슨, '와... 저 인간은 춥지도 않나, 진짜 여유롭게 가네? 이게 재밌나...?'
그와 대화라도 할 생각으로 노질을 했으나 물의 흐름을 잘 못 타서 결국 근처로 가지는 못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사람이 없었다. 함께 출발한 형과는 이미 한참 전에 이별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내리기로 했다. 힘차게 노를 저어 강변에 튜브를 정차했다. 골목을 따라 돌아다니면서 현지인들에게 길을 물어물어 마을로 돌아왔다. 분명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튜브를 반납하고 가게 앞에서 쪼그려 앉아있는데, 아까 여유로워 보였던 일본인이 올라왔다. 그런데 한국말로 욕을 하면서 올라오는 게 아닌가. 그에게 다가가 "아까 봤는데 정말 여유롭게 튜빙을 하는 것 같아 대단하다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니 그가 대답했다.
"너무 춥고 재미없어서 그냥 멘탈이 나갔을 뿐이에요"
라오스 방비엔에서의 튜빙. 다른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즌' 그것뿐이다.
다행히도 핸드폰은 말리니 작동됐지만, 스피커와 홈버튼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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