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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세계 일주

[세계일주 여행기, 라오스] #18 산악인들과 함께 한 라오스 암벽등반

by 곰같은 남자 2021. 6. 3.
라오스, 방비엔 - 2013. 12. 23

 

며칠 전 블루라군을 다녀오는 길에 태국에서 만났던 형과 누나를 우연히 만나 함께 저녁을 먹었다. 형은 전문 산악인, 누나는 준산악인이었다. 특히나 형은 산악계에서 상도 타고 잡지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산악인이었다. 함께 암푸1이라는 곳의 등반을 끝내고 휴식차 태국과 라오스 여행을 왔다고 하였다.

 

라오스 여행이 끝나면 네팔로 가서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할 예정이었기에 형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너무나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했다. 일반인이 '쉽다', '어렵다' 이야기하면 감이 오지만, 그의 말을 듣고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의 인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독한 등반가.

누나는 말 수도 많았고 활기찼다. 이번 암푸1 어택에서는 긴급상황에 대비해 베이스캠프를 지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했다. 베이스캠프라고 하여도 해발 4,000미터 이상이기 때문에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출처 : 픽사베이

 

둘은 전혀 관광에 관심이 없었다. 족히 60리터는 되어 보이는 배낭에 암벽등반 장비들이 가득했고, 여행 가이드북 대신 명산들이 소개된 책자를 들고 다녔다. 해발 6,000미터가 넘는 산을 다녀와서도 다시 산을 찾는 것이 신기해, "산을 등반하고 휴식 겸 여행을 왔는데 다시 산을 가고 싶으세요?" 물어보니, 그 산과 이 산은 다른 종류의 산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함께 암벽등반을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오늘은 그들을 따라 암벽등반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장비가 없는 나는 근처 가게에서 암벽 등반용 신발과 벨트를 빌렸고, 등반을 하러 들어가면 점심을 먹으러 나오기 힘들다며 샌드위치를 하나씩 손에 쥐고 출발했다.

약 20여분 도로를 따라 걸으니 강이 하나 나왔고, 나룻배가 건너편에 정박 중이었다. 뻐금 뻐금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드니 천천히 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출처 : 언스플래쉬

 

암벽 앞에 서니 '직각'이었다. 이게 사람이 올라갈 수 있나 싶어서 긴장하고 있으니, 형이 어깨를 한대 치며 초보자용 코스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배낭 속에서 암벽 등반 책자를 꺼내더니 '남자라면' 이 정도 암벽은 올라가야 한다며 나를 한 암벽 앞에 세웠다. 형이 먼저 올라가면서 로프를 설치했고, 그 길을 더듬으며 발을 떼었다.

 

아래에서 형이 로프를 잡아주고 있었으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가득했다.

'혹여 내가 떨어졌는데, 형의 손이 미끄러지거나 한눈을 팔다가 로프를 못 잡아주는 거 아닐까... 진짜 떨어지면 머리통 박살 날 거 같은데...'

집중이 되지 않으니 손을 3~4번 짚고 떨어졌다. 형은 내가 겁먹은 걸 알아챘는지, 걱정 말라는 말과 함께 자기 자신을 믿고 올라가라 하였다. 

'그래, 떨어지면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손 끝, 발 끝을 더듬어 공간을 찾아 나섰다.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민감하게 벽을 더듬었다.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돌 틈을 빠르게 찾았다. Yes! 등반 성공.

라오스 암벽등반

 

다음 코스는 조금 어렵다고 했는데, 진짜 직각 암벽이었다. 아까와 달리 벽도 매끈해 보이는 게 전혀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형은 마치 사다리를 잡고 오르듯이 올라갔다. 난이도가 있으니 누나가 먼저 하기로 했다. 그녀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정말 뛰어난 실력자였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눈으로 형과 누나가 올라간 길을 확인 후 손을 벽에 얹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출발하기 전 봐 두었던 표시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리 손을 더듬어도 찾을 수 없었고, 발은 지탱할 곳을 잃고 허둥댔다. 다리가 고정되지 않아 팔 힘으로 버티니 금세 팔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결국 떨어졌다. 대롱대롱 로프에 매달려 형과 누나가 알려주는 돌 틈을 살피고 다시 올랐다. 휴, 겨우 등반에 성공했다.

 

이후 3개의 암벽등반을 시도했다. 첫 번째는 등반 성공, 두 번째는 중간에 팔힘이 다 빠져서 포기, 마지막은 처음부터 도저히 잡을 곳이 없어서 몇 걸음 오르지도 못하고 포기했다. 

그에 반해 누나는 3개의 암벽을 모두 오르는 데 성공했다. 힘이 다 빠져도 공중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올랐다. 떨어지면 다시, 또 떨어지면 또다시. 그렇게 끈질기게 도전했다. 정말로, 멋진 여자였다. 

 

해가 떨어지기 전 마을로 출발했고, 고수를 한 움큼 집어넣어 향이 짙게 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잠깐 누워있는데 함께 방을 쓰는 형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맥주를 한잔 하자고 하였다. 낮에 다녀온 사우나에서 몇몇 한국인을 만났다고 하였다. 

형을 따라 늦은 시간 한국인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에서 옹기종기 앉아 맥주를 마셨다. 달이 머리 위에 차올랐을 때 카페 여주인이 잔잔하게 기타를 쳤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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