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빠이 - 2013. 12. 12 ~ 19
200미터마다 나타나는 커브길을 700번 이상 돌아야 만날 수 있는 빠이. 미니버스 안의 대부분 여행자들이 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극심한 멀미와 사투중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프랑스 아주머니는 지옥 입구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차멀미 따위를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빠이는 참으로 소박했다. 마을 중심부 '아야서비스'라 불리는 곳에 버스가 정차하니 여행객들이 살았다는 표정을 하고는 바삐 떠났다. 나는 미리 숙소 예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인터넷에서 알아둔 숙소 몇 군데를 천천히 들러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대부분이 외국인들이 많아서 재밌고 풍경이 좋다는 숙소들이었다.
망했다. 설마 내 몸 하나 뉘일 방이 없을까 했는데, 정말로 없었다. 숙소의 주인 모두가 방이 없다하였다. 마지막에 들렀던 숙소는 내가 질문을 하기도 전에 양팔을 교차하여 X를 그리고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방이 없다는 뜻임을 알지만, 다시 물어보았다. 2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 째, 기분이 나빠서 귀찮게 만들고 싶었고, 둘째, 내가 오해한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방 없어"
터덜터덜 '아야서비스'로 돌아오는데 치앙마이에서 만났던 남자가 떠올랐다. 아무 숙소나 들어가서 사정을 설명하고 와이파이를 쓰고 싶다고 하니 선뜻 쓰게 해주었다. 그에게 카톡을 보내고 5분을 기다렸다. 1이 지워지지 않았다. 계속 기다리며 와이파이를 쓰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짐을 들고나가려는 참에, 카카오톡의 1이 사라졌다. 그에게 답장이 왔다.
"아야서비스 앞에서 만나요"
그는 갈 곳 없는 나에게 방을 내어주었다. 그의 방에서 이틀간 함께 머물고 시내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옮겼다. 혼자 묵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했고, 시내와 상당히 멀어서 오토바이를 타지 못하는 나에게는 비효율적인 숙소였다. 내가 선택한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한 가격이 유일한 장점이었다. 자신들도 그 점을 아는지 대형 현수막에 'Cheapest Room'이라 자랑스럽게 적어두었다.
방은 처참했다. 침대는 당연히 없었고,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매트리스 하나와 전설줄에 매달려있는 노란 전구 하나. 그것이 방 안의 전부였다. 설상가상으로 유리창이 깨져있어서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그래도 그냥 머물기로 했다. 어차피 방에서는 잠만 잘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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