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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세계 일주

[세계일주 이야기] #1 나는 어쩌다가, 세계일주를...?

by 곰같은 남자 2020. 12. 18.

어쩌다

참으로 평범했다. 지극히도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지극히도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그렇기에 안타깝게도 꽤 오랜 시간동안 대단히 멋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보지는 못했었다.

 

그래도 세계일주를 떠날 23살 당시의 나에게, "참 사람이 멋지다."라고 느껴졌던 순간이 두 차례 있었는데,

첫번째 인물은 군대에서 본 군 변호사였다. 머리를 짧게 자른 채 눈알을 살짝만 돌려도 불호령이 떨어지던 그 때, 1,500명의 훈련병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그가 멋있었다. 그냥. 멋있었다. 아마도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게 아닐까 싶다.

두번째 인물은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만난 여자였다. 이름도 모르며, 성도 모른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그녀에게 나는, "인도 여행을 얼마나 하시나요?"라고 물었었다. 당시 약 한 달정도의 기간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었기에 어린 마음에 나름 길게 여행을 한다는 우쭐감도 있었다.

여자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음... 잘 모르겠지만, 인도에는 3개월 정도 있을 것 같아요."

무슨 대답이 이러하나 싶었지만, 그 다음 이어진 그녀의 말에 왜 그러한 대답을 했는지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하하. 세계일주 중이라서요."

 

살면서 처음 들었다.

자기 입으로 세계일주를 한다고 하는 사람은.

세계일주는 책에서나 접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던 그녀가 그 순간, 얼마나 커보이던지.

 

그래도

아직 나에게 세계일주는 먼 이야기였다. 

간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저 어렴풋이... 대학교 졸업 전까지 5번 정도 해외를 나가자는 생각정도였다. 인도는 다녀왔으니, 이집트, 해외 봉사활동, 호주 워킹홀리데이, 그리고 모은 돈으로 유럽 배낭 여행 두어달정도.

 

지루하고 따분한 기계공학 전공책 따위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었다. 매일 같이 도서관에 들러 프렌즈 가이드북을 독파해나갔으며, 살랑살랑 콧바람이 불어오는 여행 에세이를 쉼없이 읽었다. 구글 어스를 보면서 "어느나라를 가볼까나...?" 가 인생의 최대 관심사였다.

 

사람은 참으로 재밌다. 그리고 욕심은 끝을 모른다. 어느날 유럽 지도를 둘러보다가 옆을 보니 이집트가 보였다.

'어차피 이집트도 가보고 싶었는데 유럽 여행 가는 김에 이집트도 한 번에 갔다올까?'

'이집트 가는 김에 중동도 좀 보고 오면 좋겠는데...'

'음, 유럽 여행 기간을 좀 줄이고 남미도 가보는 게 어떨까?'

'돌아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인도도 다시 들렀으면 좋겠다.'

'네팔에 가면 히말라야도 등반해 볼 수 있다는 데, 거기도 갔다 한국으로 돌아갈까?'

...

'에라 모르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가자!!'

그렇게 세계일주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물론, 사실 나도 얘기해보고 싶었다.

"하하. 여행기간이 좀 길죠? 저는 세계일주 중이거든요"

 

사람은 말이 씨가 된다. 현실은 돈 한 푼 아쉬워 학식에서 가장 싼 메뉴를 먹는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나 곧 세계일주 떠나"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하지만 말을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은 시궁창이었기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큰 돈을 모아볼 겸, 그리고 그 시간동안 영어라도 한 마디 더 들을 겸.

 

그렇게

2012년 10월에 떠나, 2014년 8월 세계일주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처음 세계일주 루트를 짤 때 계획했던,

1. 어쩌면 다시 올 수 없는 먼 나라 위주로.

2. 20년 안에 도시와 사람, 그리고 문화가 바뀔 지도 모르는 나라 위주로.

라는 큰 틀 안에서 마무리 되었다.

 

대부분의 많은 장기 여행자들이 다닌 루트로 다녔기에 특별한 여행지라고 할 만 한 곳은 없었으나, 그 도시들 사이에서 기억나는 벤치가, 작은 개울이, 읽을 줄 모르는 간판이 있다는 점에서 깊이 감사하다.

꾸준히 적어두었던 여행 일기와 블로그에 두서 없이 정리해놨던 글들을 모아 차근차근 여행 이야기를 적어보려하니 마음이 설렌다. 

몇 되지 않는 사람이라도 글을 읽고, 나와 같은 곳에 방문 했던 사람은 그 때의 촉감과 냄새를. 아직 방문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함께 떠나는 것만 같은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며칠간 모아놨던 글을 읽으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23살 그 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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