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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세계 일주

[세계일주 여행기, 인도] #56 대책없는 그녀들과 함께

by 곰같은 남자 2022. 9. 7.
인도, 델리 - 2014. 2. 3

 

인도에서는 보통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원하는 시간 때에 티켓을 구하지 못하여 일정을 변경하는 일이 많은데, 나는 그런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자리가 없더라도 웨이팅 표를 구매해두면 기차에 올라타 자리는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늘도 큰 고민 없이 밤 11시 출발, 아침 6시에 델리에 도착하는 웨이팅 티켓을 구매했다.

잔시에서 기차를 타고 당당하게 표를 검사하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인도 사람들 20여 명이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급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유 있게 기다리려 했지만, 하나같이 말이 많아서 인파를 뚫고 가장 앞으로 나아가 직원을 마주했다. 

 

 

별다른 말 없이 웨이팅 티켓을 보여주며 자리를 좀 알아봐 달라고 하니 그가 나를 그의 옆자리에 앉혔다. 이제 모든 일은 끝났다. 그냥 마음 편하게 그의 옆에서 자고 있으면 되었다. 한 30여분 잠을 잤을까? 그 많던 사람들이 다 사라지고 검표원과 나만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는 잠시 나에게 기다리고 말하고는 열차를 한 바퀴 돌러 떠났다. 

 

이내 그가 돌아와 나를 끌고 갔다. 그러더니 중간에 잠시 멈춰서 "Give me something"이라 말했다. 물론 something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응?" 하고 몇 번을 되물었다. 물론, 전혀 통하지 않았다. 운이 좋게 그가 체념하고 자리를 내어주면 좋지만 이런 일은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지갑 안에 있던 돈을 내어주었다. 이때 지갑 안에 돈 넉넉하면 추가로 흥정을 해야 하니 보통 더럽고 구겨진 지폐 위주로 100루피정도 넣어두었다. 티켓을 예매할 때 웃돈을 주고 살 수 있는 표가 약 100루피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정도 값을 지불한다 생각하고 쿨하게 손에 쥐어주었다. 이 방법을 통해 단 한 번도 기차 내에서 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적이 없었고, 시간에 구애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약간의 외국인 특혜가 아닐까 싶었다.

 

창살 밖으로 인도 화물 열차 두대와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사진
인도 기차역

아침의 빠하르간지는 조용했다. 깨끗하기도 했다. 굉장히 더럽고 시끄러울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였다. 만나기로 한 여행자가 있었으므로 Good day라는 호텔을 찾아갔다. 그는 이미 두 명의 여자 일행이 생긴 상태였으나, 델리에 가면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기에 나도 그들의 동행이 되었다. 

그녀들은 인도에 처음 방문한 여행자였다. 얼굴에는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무작정 인도로 날아간 2012년의 나와 동생의 표정이 아마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보다 그녀들은 대책이 없었다. 여행루트가 굉장히 조잡했고, 시간 낭비가 많고, 불가능한 루트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여행을 침범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크게 조언을 하지는 않았다. 실수하고 생각과 다른 상황을 마주하는 것 또한 그녀들이 누릴 수 있는 여행의 특권 중에 하나였다. 대단하게도 그녀들은 인도의 첫 도시 델리에서의 대책도 없었다.

형과 함께 그녀들을 데리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 보니, 하나를 깨달았다.

'아... 나도 델리 처음 왔구나. 아무것도 모르지...^^'

 

형은 대책없이 델리에 온 3명의 여행자를 끌고 코넛플레이스로 향했다. 아디다스, 나이키 등 다양한 매장을 둘러보았지만, 내가 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구석의 구멍가게에서 샴푸만 하나 구매했다. 이는 나뿐 아니었다. 함께 온 일행들도 한국과 가격을 비교해보면서 인도가 싸네, 한국이 싸네 말만 할 뿐 아무도 무엇인가를 산 사람은 없었다. 다들 돈이 없는 여행자였다.

그보다는 좌판이 우리에게 어울렸다. 나는 100루피에 반팔 하나, 90루피 가품 리바이스 티셔츠, 150루피 가품 레이벤 선글라스, 20루피 양말 한 켤레, 120루피 9부 바지를 구매했다.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녔기에 오후는 각자의 숙소에서 쉬거나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기로 했다. 여자 여행자 두 명은 여행의 초반부터 숙소에서 쉬기는 내키지 않는다면서 델리의 모습을 조금 더 구경하러 나갔고, 오랜 기간 여행을 하고 있는 나와 형은 낮잠을 청했다.

저녁 시간 다시 만난 그녀들에게 형은 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해주었다. 탄두리 치킨과 다양한 난, 비리야니 등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풍선만큼 빵빵해진 배를 들쳐 메고 근처 바에서 킹피셔 한 병을 마시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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