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바라나시 - 2014. 1. 21 ~ 30
룸비니, 보드가야, 사르나트, 쿠쉬나가르. 4곳은 불교의 대표적인 성지다. 룸비니는 부처님이 태어난 곳, 보드가야는 깨달음을 얻은 곳, 사르나트는 설법을 처음으로 전파하던 곳, 쿠쉬나가르는 열반에 든 곳이다. 부처님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곳들이므로 가히 4대 성지라 할 만했다.
사르나트는 바라나시에서 약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2012년 인도 단독 여행 때는 방문하지 않았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사르나트는 꼭 들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바라나시만 오면 몸과 마음이 늘어져서 사르나트 가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 왠지 이번 여행에서도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이른 아침, 짜이와 빵을 먹기가 싫어서 숙소에서 만난 누나와 아침식사를 하러 카페에 들어갔다. 시간이 애매하여 손님은 우리 둘 밖에 없었다. 작은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명의 남자가 카페로 들어왔다. 한국 사람이었는데 누나와는 일면식이 있는 사람인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우리 테이블에 합석했다.
당시 나는 룸비니에서 경험했던 아침 예불에 크게 심취해있었기 때문에 누나와 바라나시 명상 센터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명상센터에서 10일을 보낸 누나는 나에게 3일 코스라도 경험해보라고 추천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명상센터 이야기가 나왔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귀찮은 마음에, "누나, 사르나트를 아직 못 갔다 와서 사르나트 다녀오고 나서 생각해볼게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옆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던 남자가 자신도 아직 사르나트를 다녀오지 않았는데 같이 가자고 하였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사르나트행이 결정되었다.
다음날, 어제 식사를 했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런데 두툼한 긴 옷을 껴입고 얼굴이 창백해 보이는 게 정상적인 몸상태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며칠 휴식을 취하고 다음에 사르나트를 가는 게 어떨지 물었으나, 그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했다. 그의 선택을 말릴 권한은 내게 없었으므로, 함께 오토릭샤에 올라탔다.
릭샤 안에서도 힐끔힐끔 얼굴을 쳐다봤는데 점점 더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으나 계속해서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도 실례인 것만 같아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사진과 다르게 사르나트는 규모가 매우 컸다. 삼장법사의 모델로 알려진 현장법사가 쓴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한때 사르나트에서는 3,000명 정도의 승려가 지냈던 적도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현재는 인도 사람 대부분이 힌두교 신자이기 때문에 현지인들에게는 그저 하나의 데이트 장소가 되어버렸고, 동아시아권 불교 신자들을 위한 관광지로써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었다.
보수공사로 철골 구조가 다메크 스투파를 둘러싸고 있었으나 건물이 풍기는 웅장함은 여전했다. 스투파를 3번 돌면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게 세계일주가 끝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무사히 여행을 끝마친 것을 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은 사실이 아니었을까?
스투파 주변을 구경하는 동안 함께 사르나트에 온 동행자가 사라져 있었다. 혹시나 몸이 안 좋아 먼저 숙소로 돌아갔나 싶었는데, 나무로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 위에 뻗어있었다. 분명 아픈 사람이었고 누가 봐도 무리해서 온 게 분명했다. 도저히 여행을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음에 이제 숙소로 돌아가자 이야기했으나 고집이 대단했다. 조금 있다가 스투파 구경을 할 예정이니 혼자 좀 더 구경하고 있었으라 말했다.
강제로 릭샤에 태워서 숙소로 돌아갈까 했지만, 그런다고 갈 사람은 아니었다. 일단 입고 있던 옷을 벗어서 몸에 덮어주고 30분 후에 다시 돌아올 테니 그때도 몸이 좋지 않으면 무조건 돌아가자 이야기하니까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생각해봐도 엄청난 똥고집이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사람이 30분 만에 좋아질 리가.
사르나트 근처의 거대한 부처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국 사원이었는데 부처상 아래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부처의 탄생, 깨달음, 설파, 해탈의 조각이 있었다. 밖으로 나와 사르나트 주변의 마을도 돌아다니고 싶었으나, 머릿속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동행자가 생각나서 도저히 더 여행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아무 말 없이 스투파를 빠져나와 릭샤에 올라탔다. 괜찮냐고 더 물어보기도 민망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고돌리아로 돌아와 터벅터벅 걸어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그 어떤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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