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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여행 생각

첫 해외 여행지를 어디로 갈지 고민하시는 분에게.

by 곰같은 남자 2021. 9. 25.

과거 제 취미는 인터넷 여행 카페에 올라온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을 달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이 세부적일수록 답변하기가 쉬웠는데, 수많은 질문들 중에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세계일주를 마치고 와서도 주변 친구들의 "이번에 해외여행 한번 가보려는데 추천 좀 해줄 수 있어?"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정말 성심성의껏 대답했습니다. 제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그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질문자는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선행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출처 : 언스플래쉬

 

제가 최근에 다녀온 여행지인 그리스를 예로 든다면,

제가 그리스를 간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파르테논 신전이었습니다. 모든 인공적인 작품은 자연이 창조한 작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저의 지론에 전복이 일어날지 궁금했습니다. 특히나 문화유적 보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 파르테논 신전은 언젠가 마주해야 할 여행지였습니다.  

 

두 번째는 양정무 교수님의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2권, 그리스 로마 편' 책이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생동감 넘치는 그리스 사람들의 그림과 예술작품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이는 온전히 저의 취향이 듬뿍 담긴 이유이지요. 제가 그리스를 가는 이유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접시에 그린 그림을 보고 싶다는 것을 누가 알 수가 있을까요. 저는 진심으로 아테네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들어갈 때 너무 흥분돼서 손이 떨렸습니다.

 

다시 앞서 질문자가 던진 질문을 곱씹어보면, 질문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색을 가진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약간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지요.

질문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겠지만, 귀찮게 고민하기 싫어서 물어본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남들이 해외여행을 다니니 나도 한 번쯤은 가봐야 할 것만 같은, 딱 그 정도의 생각으로 뱉은 질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질문이 매우 추상적이니 구체적으로 답변할 알맹이도 없습니다. 열정을 쏟아 이야기해봤자 듣는 사람 귀에는 당연히 들어가지 않습니다. 결국 할 수 있는 답변은 애매모한 답변들뿐이지요. 사실 저는 그냥 마음이 내키는 대로 아무 곳이나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자기 취향이 없는 사람이니까요. 

 

 

어쩌면 질문자도 도움이 필요한 것일 수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자신만의 색을 찾는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런 상황이라면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으로 대부분 문제가 해결됩니다.

 

나는, 

문화 유적 구경을 좋아하는지?,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활동적인 것을 좋아하는지?, 푹 휴식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산을 좋아하는지?, 바다를 좋아하는지?, 강을 좋아하는지?, 들판을 좋아하는지?

밥을 좋아하는지?, 면을 좋아하는지?, 빵을 좋아하는지?

 

질문은 점차 세세해질수록 좋습니다. 여기서 질문의 포인트는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고민해봐야 할 것 같지만 생각 외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생각 외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취향을 꽤 상세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출처 : 언스플래쉬

 

80억 인구가 사는 지구에는 80억 개의 취향이 존재합니다.

질문자는 80억 인구 중에 유일한 취향을 갖고 있는 매우 독특한 사람이기 때문에 질문자의 취향은 질문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매번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여 다른 사람의 취향을 가득 담은 여행 계획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친구가 여행을 간다고 할 때 "나도 같이 가자"라는 말로 친구의 취향에 묻어가고 있다면, 딱 한 번만 자신의 취향이 가득 담긴 그곳으로 떠날 준비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첫 여행지는 정말 매우 중요합니다. 첫 여행이 재미가 없고, 시간 낭비라 느껴진다면 앞으로 다시는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고민하여 나의 취향을 가득 담은 여행지를 가보더라도 재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취향에 얹혀간 것과 내가 고민해서 나만의 취향을 담은 여행지를 가는 것과는 완벽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취향이라 생각한 무엇인가가 실제로는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꼈고, 새로운 취향을 찾은 것이니까요. 

"아... 내 취향은 이게 아니었구나. 경험해보니까 나는 산보다 바다가 좋네? 나는 쉬는 것보다 박물관을 가보는 게 좋네?"

 

이런 경험을 한 두 번만 하면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지를 추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게 됩니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에 고민의 과정도 사라지지요.

몇 장의 사진을 훑어보거나 그 나라 문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만 읽어도 나와 맞는 여행지인지 바로 판단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디로 떠나든 자기만의 스타일로 여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떠남에 두려움까지 사라집니다. 

부디, 꼭, 첫 여행지만큼은 그 누가 추천하는 곳이 아닌, 자신의 취향을 가득가득 구겨 넣은 나만의 여행지로 가보기를 바라겠습니다.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즐겁고 안전한 여행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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