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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짧은 여행

[12' 인도여행] # 환상이 깨져 현실이 되버린 타지마할

by 곰같은 남자 2022. 3. 16.
인도, 아그라 - 2012. 2. 15 오후

 

아그라에서 하루 머물고 바라나시로 갈까 하였지만 타지마할을 방문하는 것 말고는 그다지 끌리는 여행 명소가 없어서 밤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로 넘어가기로 했다. 밤 12시에 출발하는 기차였기 때문에 타지마할 구경하기라는 단 하나의 일정만 소화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여유로웠다. 대략 거리를 보니 약 7~8Km 정도가 되어 슬슬 걸어갈까 하였지만 동생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높은 가격을 부르는 릭샤꾼들을 물리치고 할아버지가 운행하는 사이클 릭샤에 탑승했다. 

 

자이푸르에서 노인이 운전하는 사이클 릭샤는 타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던 것이 다시 떠올랐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고, 할아버지가 너무 힘들어하셔서 편안하게 앉아서 가는 게 미안했다. 거기에 우리의 설명이 부족했는지 타지마할의 남문이 아닌 동문으로 데려다주셨다. 

마음이 불편하여 젊은 청년의 릭샤를 타고 이동하려 하니까 다시 타라며 선한 미소로 우리를 불렀다. 남문에 도착하여 고마움과 미안함에 약간의 팁을 더 얹혀드렸다. 대충 계산해보니까 오토릭샤 값 정도를 지불한 거 같았다.

 

 

처음으로 집에 전화를 드렸다. 꾸준히 카카오톡으로 집과 연락을 했기에 따로 전화를 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목소리를 들어보니 엄청 걱정을 하셨는지 목소리가 평소와는 달랐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반가워하셨고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짧은 통화를 마치고 오늘의 목적지인 타지마할로 향했다. 

아직 시간이 넉넉한 편이라 한적한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뭄바이 여행 계획도 세워야 했고 환전도 해야 했으며 나름대로 그간의 여행 일지를 정리해야만 했기에 가방을 맡겨둘 필요가 있었다. 식당의 주인에게 가방을 맡아줄 수 있는지 "No Problem"이라는 시원한 대답이 돌아왔다.

4시 30분쯤 타지마할로 출발했다. 여유 있게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뛰다시피 매표소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우리도 발걸음을 재촉해 따라가니 입장 시간이 5시까지였다. 5분만 늦었으면 타지마할을 보지도 못하고 아그라를 떠날 뻔했다. 안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깔끔하게 정돈된 길과 연못 앞에 특히나 많이 모여있었다. 누가 봐도 사진의 명소였다. 

 

우리는 그다지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서 건축물 가까이로 가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 막무가내로 사진기를 뺐어서 우리에게 포즈를 취하라 이야기했다. 딱 봐도 돈을 요구할 것이기에 필요 없으니 사진기를 돌려달라 했으나 끝까지 사진기를 돌려주지 않으면서 자세를 취하라고 했다.

'뭐, 그래 찍어라'라는 마음으로 자세를 잡으니 역시나 돈을 요구했다. 일단 사진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고 싶다 말하여 카메라를 돌려받고는 무시하고 자리를 떠났다. 당연히 돈도 주지 않았고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으니 개가 짖는 소리와 같았다.

 

타지마할 측면
타지마할
타지마할 전면
타지마할

참으로 위대한 건축물이었다. 아주 아름다웠고 세련되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상한 후회와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아니, 더 정확히는 환상이 깨져버렸다. 

인도행 비행기를 타면서 타지마할의 벽은 무슨 색일까, 촉감은 어떠할까, 크기는 정말 클까 같은 수많은 환상이 있었지만 실체를 마주하면서 환상은 곧 현실이 되었고, 마주한 현실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 무엇들과 똑같은 경험만을 선사할 뿐이었다. 

 

타지마할 옆 골목길에서 빨간색 옷을 입고 크리켓 배트를 들고 있는 나와 투수쪽을 바라보고 있는 인도 현지인들
크리켓을 하는 모습

6시쯤 타지마할을 빠져나왔지만 밤 12시 기차 시간까지는 아직도 6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근처 타지마할 주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한쪽 골목에서 크리켓을 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다가가 그들에게 함께 게임을 하자고 하니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를 게임에 초대시켜주었다. 약 30여 분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하늘을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식당인 조니스 플레이스를 방문했다. 예상한 대로 한국사람밖에 없었다. 불고기 덮밥을 시켜먹었는데 요리사가 한국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 건지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간과 맛을 구현했다. 그곳에서 조드푸르에서 만난 형우라는 친구와 다시 만났고, 주변의 한국인들과 여행 이야기를 나눴다. 상당히 오랜 시간 있었으나 주인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아 고마웠다. 

 

어느새 아그라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형우는 슬리퍼 칸을 예매했고, 나와 동생은 3A칸을 예매했기 때문에 바라나시 입구역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차디찬 침대에 눕자마자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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