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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짧은 여행

[12' 인도여행] #14 파테푸르 시크리의 음침한 그 방

by 곰같은 남자 2022. 1. 18.
인도, 파테푸르 시크리 - 2012. 2. 14

 

아그라에서 타지마할을 보기 전, 파테푸르 시크리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하루 머물다 가기로 했다. 아그라 역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라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여행자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순박한 도시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아그라 역에 도착하니 정말 대단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릭샤꾼들이 몰려들어 하나 같이 "타즈(타지마할)~, 타즈~"를 외쳤다. 한참을 실랑이한 후에야 그들을 떼어놓고 일단 점심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론리플래닛 가이드북을 펼쳐보니 사다르라는 시장이 있었기에 한적한 길을 걸어 30분 만에 도착했다. 

 

론리플래닛이 베스트로 추천한 식당은 기절할 정도로 비쌌다. 외관부터 고급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우리는 시장 아주 깊숙한 곳에 있는 로컬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간판에는 햄버거, 피자, 콜라 그림이 그려져 있었지만 인도 현지 음식도 파는 집인 듯하였다. 간단하게 햄버거를 하나 먹었다.

 

조드푸르부터 함께 한 친구 4명 중 2명은 이곳에서 헤어져야만 했다. 그녀들은 이미 타지마할을 본 후였기에 우리의 목적지인 아그라는 갈 필요가 없었다. 바로 바라나시로 향한다고 하였다. 어차피 우리도 아그라를 지나 바라나시를 갈 예정이었기에 며칠 후에 다시 만나자 인사를 하고 그들을 떠나보냈다. 

버스 스탠드에서 버스를 타고 파테푸르 시크리로 가는 도중, 핸드폰이 두세 번 혼자서 재부팅을 하더니 갑자기 전원이 켜지지 않았다. 당시 아이폰 탈옥을 해둔 상태였는데 인도 한복판에서 완전히 벽돌이 되어버렸다.

 

 

인도 여행 중 기억에 남는 최악의 여행지를 꼽으라면 나는 두 말 없이 파테푸르 시크리를 꼽겠다. 버스 스탠드에 내리자마자 어찌나 격하게 호객질을 하는지, 진짜 치가 떨릴 만큼 따라왔다. 떼어 놓으려고, 떼어 놓으려고, 떼어 놓으려고 발악을 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지쳐서 어쩔 수 없이 호객꾼 한 녀석을 따라갔다.

 

그런데 앞장서서 걸어가는 호객꾼이 계속 우리를 으슥한 골목길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느낌이 좋지 않았다. 친동생과 일행이 된 동생, 누나에게 내가 신호를 주면 아무 생각 말고 뒤도 보지 말고 도망가라고 일러두었다. 선빵으로 죽빵을 한대 세게 갈긴 후 나도 도망갈 생각이었다. 

점점 좁은 길, 조금 더 어두운 길, 아까보다 인적이 드문 길까지 도달했다. 이건 누가 봐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안내였다. 코너를 돌자마자 여기서도 더 음습한 골목길이라면 바로 얼굴에 주먹을 한대 꽂고 도망가려 했는데 조금 넓은 길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식당 입구에 서있는 인도 현지 아이오토바이 앞에 서있는 세명의 인도 남자 아이
작은 대장간에서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는 성인 남자 두명흙길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 4명과 여자아이 1명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는 선셋 뷰 게스트하우스라는 곳에 짐을 풀었다.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다. 무려 더블룸이 50루피였다. 주인은 더블룸 200루피를 제시했지만, 워낙 시내와 멀었고 길이 어둡고 험하다는 이유로 뒤도 보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려 하니 바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방 내부는 깨끗한 편이었으나 따뜻한 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주인에게 샤워를 요청하니 따뜻한 물이 담긴 양동이를 가져다주었다. 

 

자그마한 루프탑으로 올라가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루프탑 안에는 한 명의 현지인이 있었는데 자신을 사진 기자라고 소개했다. 내일 새벽안개가 짙게 낀 모스크를 촬영할 계획이라며 자신과 함께 모스크를 올라갈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 모두 사진 기자라는 말에 아주 멋진 뷰포인트를 알고 있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들어 군말 없이 따라가기로 했다. 

 

맥주 한잔과 근사한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왔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저렴하고, 퀄리티도 꽤 괜찮은데, 뭐랄까... 매우 기분 나쁜 음침한 기운이 흘렀다. 오싹할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성격이 굉장히 둔한 편이라 이런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 데에도 불구하고 몸이 찌릿찌릿했다. 미신을 믿지 않았지만 이 방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괜한 소리를 하면 동생이 불안해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도저히 불을 끄고 잘 자신이 없었다. 결국 불을 켜 둔 채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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