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대 중반에 세계일주를 다녀왔습니다. 아시아에서 시작해 중동, 아프리카, 남미, 북미까지 이어지는 장대한 여행길이었지요. 여행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제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의 저는 블로그에 고스란히 나타나듯 온통 투자, 자산 증식에 모든 관심이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일주를 떠날 당시의 저는 진짜 상상초월 히피 마인드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세계일주 이후에 알게 된 사람들은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상이 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당시, 삶을 살아가면서 돈은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거의 경시하다시피 했습니다. 돈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불행한 삶이라 평가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오로지 자유뿐이라 생각했지요. 돈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고민했습니다.
'고작 50리터 배낭 하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데 왜 모를까?', '어떻게 하면 내가 그들 안에 갇혀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터트려줄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하면 매우 매우 정말 정말 오만방자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남아메리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어느 이름 모를 골목길을 걷다가 저의 생각을 180도 뒤집어버리는 의문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아래 글은 당시 제가 쓴 일기 내용입니다.
문득 든 한 가지 의문
어딘지 골목길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짊어진 배낭이 무거워 어깨가 아팠다. 길 한복판에 서서 배낭을 고쳐 메는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째서 이 50리터 배낭 하나만을 메고 세상을 떠돌아다닐 수 있는 것일까?"
의문을 해결하는 것보다 급한 게 무거운 배낭이었으므로, 생각을 멈추고 저렴한 숙소를 찾아 짐을 풀었다. 호텔 침대처럼 푹신하지는 않았으나, 꽤나 만족스러운 편안함을 주는 나쁘지 않은 침대에 지친 몸을 뉘었다. 이불 또한 깨끗했고, 보드라웠으며, 약간의 은은한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그 순간 아까의 의문이 말끔하게 해소되었다.
"돈, 나는 이 아늑함을 돈으로 구매한 것이구나. 이 간단한 것을 지금 깨달았다니..."
돌이켜보니 많은 것들을, 어쩌면 모든 것들을 돈으로 해결하면서 여행하고 있었다.
돈이 없었더라면 나의 여행은 어땠을까?
일단, 갖고 다닐 잡동사니들을 싣고 다녀야 하니 큼지막한 리어카를 하나 구매해야 했고, 비나 눈으로 젖어버리면 안 되니 방수가 되는 빳빳한 천막도 설치를 해야 할 듯했다. 밤이 되어 잠이라도 자려면 1인용 텐트를 장만해야만 했고, 추운 밤을 보내려면 깃털이 풍성한 침낭도 하나쯤은 필요해 보였다.
이 정도면 대충 주(住)는 해결했다지만, 먹을 거는 어쩌지?
밥을 하려면 냄비가 필요했고, 달걀이라도 부쳐 먹으려면 프라이팬도 하나 필요했다. 냄비랑 프라이팬만으로 음식 조리가 되지는 않았다. 라이터로 프라이팬을 달궈서 조리할 수는 없으니, 휴대용 가스도 사야 하고, 휴대용 가스를 쓰려면 가스버너도 어디서 구해와야 했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마당에 언제 식료품점이 나타날지 모르니, 쌀도 비축해둬야 하고 파스타면도 한두 개 사두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 요리를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식용유가 필요하고, 깨끗한 물이 필요하고, 소금, 후추, 간장, 설탕이 필요했다. 평생 이것만 먹고살면 낙이 없으니 가끔씩 먹을 소시지도 사야 하고, 햄도 사야 하고, 양배추도 사야 하고, 양파도 사야 하는데, 그냥 리어카에 방치하면 썩으니 아이스박스도 하나 사야 했다.
아, 숟가락과 젓가락도 챙겨야겠네. 뭐, 손으로 먹어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국 정도는 품위 있게 숟가락으로 먹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점심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점심 식사가 끝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사용한 냄비와 프라이팬을 닦으려면 수세미가 필요하고, 세제도 필요했다. 또, 물이 필요했다.
이것만으로도 리어카 한가득 실리겠지만, 여기에 옷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리고 진짜 소름 끼치게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것을 사기 위해서 그놈의 "돈"이 필요했다.
만일 내가 정말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잠은 길바닥에서 자면 되고, 옷은 누가 버린 헌 옷 입으면 되지만, 밥은 먹어야 했다.
밥 동냥을 해야 하는데, 거지처럼 지나가는 사람에게 두 손 모아 손바닥을 내밀어 구걸할 수는(고작 여행을 하기 위해) 없을 테니, 근처 식당으로 뛰어 들어가 설거지라도 하면서 밥 세끼를 얻어먹던가, 그것도 안되면 무릎 꿇고 제발 밥 한 끼라도 먹여달라고 해야 하는데...
아, 이렇게 돈과 멀어져서 나에게 남는 게 뭐지...?
돈은 중요합니다.
걸어 다니든, 뛰어다니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든, 자동차를 끌고 다니든, 그 어떤 여행을 하든 간에 진정으로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배낭을 하나 메고 자유롭게 세상을 떠도는 게 가능했던 이유는 호주에서 피땀 흘려 저축해 둔, 호주 ANZ카드 안에 들어있던 돈 때문이었습니다.
세계일주를 하신 많은 분들이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깨우치고 왔다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반대였습니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여정이었습니다. 돈이 많아본 적이 없어서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으면 어마어마하게 행복한지는 모르겠으나, 돈이 없으면 내가 원하는 바를 하는 데에 지정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지요.
저는 돈이 좋습니다. 돈이 넉넉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기에 돈을 항상 가까이 두고, 돈과 관련된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소한 돈 때문에 제 행동에 거대한 제약이 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에 구속받지 않고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돈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돈이 없는데 돈에 구속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범접하기 매우 어려운, 뭐랄까 해탈의 경지입니다. 오늘 하루 진정으로 즐겁고 자유로운 나를 마주하고 싶다면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이 있으려면 돈을 가까이 두셔야 합니다.
혹여라도 지금 돈에 관심이 없는 사람, 돈은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자신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돈으로 해결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신체적, 정신적 자유의 최종 장애물인 돈을 뛰어넘고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욱더 주변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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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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