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자이푸르 - 2013. 2. 5 오전
해가 중천에 떠야만 겨우 잠에서 깨던 내가 아침 7시 알람 소리를 듣고 바로 눈이 떠졌다. 어제 뭄바이에 도착하자마자 자이푸르로 날아와서, 어찌 보면 오늘이 인도 여행의 첫날이었다. 약간의 흥분 덕에 이른 아침부터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첫 여행 일정으로 자이푸르 시내 관광을 할 예정이었는데 론리플래닛에 나온 도보 추천 코스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숙소 밖으로 나왔지만 도보 추천 코스의 시작점인 빠쯔빠띠가 어디인지 알리가 없었다. 지도를 보는 감도 없을 때라 일단 릭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릭샤 값은 40루피정도 예상했으나, 릭샤왈라가 20루피를 불렀기에 흥정 없이 바로 릭샤에 탑승했다.
우리가 탄 릭샤는 사이클 릭샤였는데 타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타고 나서야 알았다. 릭샤꾼이 외발이었다. 한 발로 페달을 밀고 다시 그 발로 페달을 뒤로 감아 같은 발로 밀었다. 페달을 온전히 한 바퀴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것은 당연했다.
나와 동생은 속도가 느려질수록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주변 사람들이 "저... 저런 고얀 놈... 어르신이 외발로 릭샤를 끄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편안하게 앉아서 가네..., "라고 말하며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발이 릭샤왈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값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를 불쌍하고 가엾은 노인네로 생각해버렸다.
릭샤왈라가 주행을 마치고 가만히 서서 손으로 땅을 가리켰다. 벙어리인 듯했는데, 아마도 도착했다는 뜻 같았다. 여기서 나의 그 싸구려 동정심보다 더 큰 실수가 벌어졌다.
나는 릭샤에서 내리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향해 이곳이 빠쯔빠띠가 맞는지 물어봤다. 첫 번째 사람이 맞다고 했고, 두 번째 사람이 맞다고 했고, 세 번째 사람이 맞다고 했을 때야 릭샤에서 내렸다. 그만큼 그를 믿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니 아무 말 없이 웃음을 보이고는 릭샤를 끌고 자리를 떠났다.
도대체 난 왜 그랬을까... 인도 여행 중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였다.
빠쯔빠띠에 도착해서는 책에 의존하기보다 발길 가는 데로 걸었다. 처음 만난 관광지는 하와마할이었다. 무척이나 예뻤는데, 매력이 없었다. 하와마할을 보면서 만화 원피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루피가 몽블랑 크리켓이라는 캐릭터를 만날 때 나오는 집이 있는데, 앞은 화려하지만 뒤는 전혀 볼 것이 없는 작은 집이 나온다. 하와마할이 그와 같았다. 앞은 화려하지만 뒷모습은 별게 없는 그냥 평범한 집과 같았다.
돈이 떨어져서 첫 환전을 해야만 했다. 짠따르만따르 옆, 옷집에서 환전을 해주길래 환율을 물어보니 100달러당 4,700루피를 불렀다. 관광지 옆이라 환율을 높게 쳐주지 않는 듯하여 다른 곳도 들러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한 무리의 인도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질문할 게 어찌나 많은지 한국의 실업률, 내 전공과목과 취업전망, 물가 등을 물어봤다. 그러나 내가 어찌 아나 그것을.
대충 대답하고 환전소를 찾아야 한다고 자리를 뜨려 하니 자신들이 환전을 해주겠다고 하였다. 가격이 궁금해서 100달러당 얼마를 줄 수 있는지 물어보니 4,650루피를 불렀다. 4,750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왔던 길을 돌아가 잔따르만따르 옆 옷 가게에서 4,700루피에 환전을 했다. 환전을 하고 있으니 동생이 바지가 하나 사고 싶다고 하여 바지도 한벌 샀다.
시티 팰리스는 각 도시마다 있기 때문에 자이푸르의 시티 팰리스는 가지 않기로 했다. 잔따르만따르도 구경하지 않았다. 대신 고빈드 데브지 사원이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사원 근처에 도착하여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데 경찰들이 차와 보행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궁금한 것을 참지 않는 성격이라 사원 가는 것을 멈추고 그들을 따라나섰다. 현지인 한 명에게 이게 무슨 축제냐고 물어보니, 그가 이것은 축제가 아니고 뭐라 뭐라... 이야기하려는데 그 순간, 거지 아이들 30명이 달려들었다.
"펜슬, 펜슬"이러면서 따라오는데 너무 무서웠다. 그대로 있다가는 다 털릴 것 같아서 빨리 자리를 옮기려는데 아이들이 그새 달라붙어 떼어내기가 어려웠다. 결국 내 필통을 열어 펜이 없음을 보여준 후에야 해방될 수 있었다.
축제인지 무엇인지 모를 행진을 따라가는 것은 포기하고 고빈드 데브지 사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사원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욕을 먹었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황급히 신발을 벗어서 가방 속에 넣었다.
이곳에서는 사진을 하나도 찍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너무나 열심히 기도를 했다. 벽을 만지며 기도하는 사람, 구석에 서서 기도하는 사람, 엎드려서 기도하는 사람, 사원 주위를 돌면서 기도하는 사람.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혼잡하고 번잡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이 분출하는 묘한 진정성과 차분함이 있었다. 방식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도 한쪽에 서서 잠시 기도를 한 후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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