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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세계 일주

[세계일주 여행기, 인도] #57 그녀들에게 여행을 가르치다?!

by 곰같은 남자 2022. 9. 22.
인도, 델리 - 2014. 2. 4

 

인도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시아의 여행이 끝나는 날이기도 하였다. 뭔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으나, 기분은 묘했다. 인도를 떠나기 전, 어제 만났던 여자 여행자들과 레드포트를 방문하기로 했다. 그녀들을 만나자마자 나는 그녀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저 졸졸 따라만 다닐 테니 직접 흥정을 하고 레드포트까지 한번 가보는 게 어떠할지'

내가 뭔가 대단한 여행자라서 이런 거만한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해봐야 할 것들을 최대한 빨리 부딪혀서 남은 여행을 즐겁게 보냈으면 하는 작은 바람뿐이었다.

 

 

첫 난관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 가능한 그 난관, 릭샤였다. 대로변으로 가서 서있으니 릭샤가 줄지어 우리 앞에 정차했다. "너네 어디를 가니?", "레드포트 가고 싶은데", "200루피에 내가 레드포트까지 태워 다 줄게!", "150루피는 안될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들이 릭샤에 타려고 하길래 내가 개입하여 릭샤꾼을 돌려보냈다. 

그들에게 대략 1킬로미터당 15~20루피 정도 잡으면 된다고 알려주고, 아마 50루피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해주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릭샤가 앞에 섰다.

 

"40루피에 레드포트까지 가능할까? 릭샤가 대꾸도 없이 떠나려 했다. 그를 다시 잡고 얼마를 원하는지 물어보니 100루피를 원했다. 만족스러운 가격은 아니었다. 다음 릭샤꾼에게도 물었다. "레드포트 40루피" 그가 100루피를 원했다. "50루피", 그가 80루피를 원했다. "60루피 만약 이 가격을 수용할 수 없으면 그냥 가도 좋다"라고 이야기하니, 그가 잠시 고민하고는 우리를 태웠다.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가격이 얼마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우리가 현지인과 같은 가격을 내고 탑승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여행자에게는 시간도 돈이기에 10루피, 20루피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그리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자신이 세운 기준선에서 적당한 금액에 합의가 된다면 빠르게 이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물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자신의 합리적 기준점이 높다면 흥정도 더욱 빠른 것은 당연했다.

 

레드포트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컸다. 하지만 안쪽까지 들어가 보고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녀들에게 안쪽이 궁금하면 다녀오고 다시 만날 시간을 정하자고 하니, 그녀들도 그다지 안쪽에는 들어가 보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함께 사진을 몇 장 찍고 성벽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로써 아시아의 마지막 관광 일정이 끝이 났다. 터키행 비행기를 타야만 했으므로 다시 빠하르간지로 돌아가야만 했다. 

 

레드포트 성벽
레드포트

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서울역을 가는 방법이 오로지 택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한국 사람이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택시를 타고 서울역을 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하철도 있고, 버스도 있다. 가까우면 도보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외국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도시와 나라를 대표하는 관광지와 연결된 버스가 단 한 대도 없을 리가 없었다. 특히나 레드포트는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지이므로, 분명 빠하르간지와 레드포트를 연결하는 버스가 있을 법하였다. 그렇기에 그녀들에게 빠하르간지로 돌아갈 때에는 버스를 타는 게 어떨지 제안했다. 당연히 그녀들은 승낙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빠하르간지나 뉴델리역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수많은 버스들이 운행한다고 하였다. 착하게 생긴 현지인이 추천해준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참으로 버스를 좋아했다. 여행의 재미를 몇 배 증폭시켜주는 매력적인 도구라 생각했다. 현지인들과 가볍게 섞이기 좋고, 도시의 다양한 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선적인 여행이 면적인 여행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목적지가 어딘지 몰라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친절했다.

옆의 사람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해두면 알아서 내리라고 신호를 주었다. 혹여나 그가 나보다 먼저 내려야 한다면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나의 목적지를 이야기해주고 잘 챙겨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또한 버스는 굉장히 안전한 교통수단 중에 하나였다. 버스 내의 승객이 나 하나를 납치하거나 절도를 하기 위해 준비된 사람 일리가 없었다. 소매치기만 주의하면 1:1로 탑승하는 택시가 수십 배는 위험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구경하는 동안 그녀들은 주변의 사람 몇 명과 친해진 듯 말을 섞고 있었다. 아주 붙임성이 좋은 그녀들이었다. 앞의 남자와는 페이스북 아이디를 주고받았고, 뒤의 아주머니가 안고 있는 아이와는 벌써 인사를 나눈 듯했다. 그리고 빠하르간지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의 모두가 그녀들을 위해 버스를 세웠다. 어디를 가도 그녀들은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할 여행자처럼 보였다.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고 어제 나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준 형을 만났다. 그 또한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에 기념품을 사고 있었는데,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념품을 많이 사고 있었다. 히말라야 비누 80개, 알라딘 바지 30장, 그 외의 소소한 잡동사니들을 배낭 깊숙이 쑤셔 넣었다. 심지어 선물을 담기 위해 본인 물품 몇 가지를 버린 듯하였다. 

바라나시에서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다. 내가 아플 때도 음식들과 약을 나눠주었던 사람이었다. 작은 것을 베풀어도 포근한 느낌이 나게 베풀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다.

 

나 또한 인도보다 물가가 비싼 중동 생활을 대비하여 치약과 수건, 샴푸와 바디클렌저를 추가로 구매했다. 그리고 오후 1시, 떠날 시간이 되었다. 형과 여자 여행자들이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그들의 손에 들려진 검은 봉지 안에는 한 보따리의 과자가 담겨있었다. 나에게 건네주며 남은 여행도 안전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마무리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본 사람들은 아니었으나 많은 교감을 나눈 사람들 중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포옹을 한 번씩 하고 지하철역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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